에버노트와의 이별: 15년 동안의 여정을 끝내다.
나는 오늘 3000개가 넘는 노트를 모두 삭제하고 에버노트(Evernote)와 완전한 이별을 고했다. 거의 10년을 주력으로 사용했던 디지털 파트너?와의 작별은 여러가지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2008년 출시된 에버노트는 당시 디지털 노트 앱의 혁신의 아이콘이었다. “모든 것을 기억하라(Remember Everything)“라는 슬로건 아래 우리의 두 번째 뇌가 되어주겠다고 약속했던 바로 그 서비스!
나는 2009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했고, 한때는 그 혁신적인 기능들에 매료되어 에버노트와 관련된 책까지 낼 정도로 열정적인 사용자였다.
웹 클리핑, 강력한 검색 기능, 멀티미디어 지원, 그리고 어디서든 접근 가능한 클라우드 동기화까지. 에버노트는 정말로 우리의 디지털 라이프를 혁신적으로 바꿔놓았다.

변화의 조짐들
하지만 언제부턴가 에버노트는 변하기 시작했다.
에버노트는 아주 잘 만들어진 서비스였다. 사용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기능은 이미 완성형에 가까웠지만, 무리하게 여러가지 기능들을 추가해 나가면서 기존의 잘 만들어진 기능들의 장점을 반감시켜 나갔다.
필자가 느끼기에 당시 새로운 기능은 이상하리만큼 디지털 노트앱 본연의 주요 기능을 무력화 시키는 방향으로 업데이트 되었고, 이로 인해 프로그램 전체가 무겁고 느려지는 현상이 빈번해졌다.
물론 단순한 디지털 메모장의 용도를 넘어 더 많은 기능으로 사용자를 사로잡으려고 한 그 의도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로인해 간편하고 빠른 디지털 메모서비스라는 본연의 역할을 소홀이 해서는 안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에버노트 개선이 아니라 다른 앱 개발에 돈을 쓰거나, 양말 따위 머천다이징을 파는 외도를 시도했다.
그 사이 업노트(Upnote), 옵시디언(Obsidian), 노션(Notion) 같은 새로운 노트 앱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에버노트가 놓친 부분들을 채워나갔다. 특히 옵시디언은 마크다운 문법으로 작성할 수 있는 크로스 플랫폼 노트 앱으로 노트와 노트끼리 연결한 그래프를 직관적으로 볼 수 있는 혁신적인 기능을 제공했다.
무료 정책의 급격한 변화
그리고 2024년, 에버노트는 결정타를 날렸다. 무료 버전 사용자는 오직 1개의 노트북과 50개의 노트만 사용할 수 있으며, 기존 유저가 아닌 이상 겨우 이 정도의 이용한도로는 에버노트 측에서 강조하는 기능들을 충분히 사용할 수도 없다는 제한이 가해진 것이다. 거기다 서비스의 이용료도 지나치게 올랐다. 새롭게 유입되는 무료 사용자에 대한 배려가 거의 없어졌고 필자와 같은 기존 사용자들마저 유료 구독을 지속하지 않고는 기존의 노트들 조차 원활한 조회와 이용이 힘든 상태가 된 것이다.

오랫만에 열어본 에버노트에서 구독을 유지하지 않는 기존 사용자들을 최대한 불편하게 만들기 위한 여러가지 팝업창들을 보면서 나는 완전한 이별을 결심했다.
새로운 선택지들의 등장
다행히 에버노트의 독주 시대는 이미 끝났다. 이미 시장에는 다양하고 우수한 대안들이 존재한다.
디지털 노트앱의 대표적인 옵시디언(Obsidian)은 로컬 기반으로 작동하여 속도가 상당히 빠르고, 파일을 쉽게 옮길 수 있으며, 서비스가 망해도 하드드라이브가 있는 한 내가 작성한 메모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디지털 노트 사용자들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검색 기능을 매우 충실하게 잘 구현하고 있으며 수많은 플러그인들은 사용자의 노트 작성 환경을 풍족하게 만들어 준다.
노션은 무료사용자에게도 거의 제한없는 사용환경을 제공하며, 업노트(Upnote)는 정말 노트 작성 그 자체의 완성도가 독보적인 깔끔한 노트앱으로 데스크탑, 모바일앱, 크롬 확장이 가능하다. 빠른 속도와 무료버전에서 일부 제한이 있기는 하지만, 월 1.99달러 혹은 39.99달러 1회 구입으로 평생 사용이 가능한 합리적인 가격 정책을 제공한다.
초심을 잃은 에버노트
에버노트의 몰락(?)은 단순히 하나의 앱이 사라지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제는 옵시디언을 비롯해 에버노트 보다 훨씬 편리한 무료 대체제들이 넘쳐나는 상황임에도 신규유저의 진입장벽은 높이고, 기존 유저는 쥐어짜는 듯한 정책을 고수하며 유저 이탈을 가속화 시키고 있다는 것은 사용자들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외면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에버노트는 유니콘이라고 불렸던 혁신적이었던 기업이 어떻게 몰락의 길을 걸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되어버렸다. 사용자의 니즈보다는 단기적인 수익에만 매몰된 정책, 사용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외면하고 변화하는 시장에 대한 무감각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필자는 단언한다.
새로운 시작
그동안 일말의 미련과 애정으로 유지하던 서비스였던 에버노트에서 오늘 3000개가 넘는 노트를 삭제하며 느낀 감정은 단순한 아쉬움 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해방감에 가까웠다. 이미 업노트와 옵시디언으로 옮겨간 나의 디지털 노트 기반은 더욱 효율적이고 만족스러워졌기 때문이다.
10년 이상의 긴 시간 동안 함께했던 에버노트에게는 고마움을 표한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로 작별할 때가 되었다. 사용자를 진정으로 생각하고, 지속적으로 혁신하며, 합리적인 정책을 펼치는 새로운 도구들과 함께 더 나은 디지털 라이프를 만들어나갈 시간이다.
초심을 잃은 서비스의 침몰을 지켜보며, 진정한 혁신이란 무엇이고 사용자를 위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